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351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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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목요일에, 오늘 아침 사진 처럼, 과메기와 프랑스 2025년 햇 와인 <보졸레 누보>의 '관계'에 놀랐다. 오늘 오후에는 성당에 개최하는 <2025 도전! 골든벨>에 나간다. 그래 아침에 <인문 일지>를 공유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콜로새, 2:16)가 주제이다. 어제 다 못한 "내 인생을 펼치려면 계속해서 부딪혀야 한다"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는 ‘여기’와 ‘저기’의 경계를 터부(taboo) 또는 ‘현관(玄關)'이라 한다. 이 경계에는 항상 괴물이 등장한다. 이 경계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다. 그 괴물은 오랫동안 수련하고 준비하지 않은 자들을 과거로 돌려보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는 비극적인 인물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고향 테베로 들어갈 참이다. 역병에 시달리고 있는 이 도시 성문에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앉아 있다. 스핑크스(Spinx)는 그리스어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 그 대상을] 목 졸라 줄이는 존재’ 라는 뜻이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묻는다. “아침에는 네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존재가 무엇이냐?” 오이디푸스 이전에는 그 누구도 이 질문을 대답하지 못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이름처럼, ‘발이(푸스) 퉁퉁 부어(오이디)’ 스스로 걷지 못했다. 그의 부모가 그를 어릴 때부터 자립할 수 없도록 두 발을 실로 꽁꽁 묶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은 불행하게도 오이디푸스의 발에 묶인 실이다. 현대인들은 손목에 명품시계를 찾고 있지만, 태양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일생 세련된 차를 타고 다니지만, 그들은 결국 발에 힘이 없어 목발이나 휠체어에 의존한다. 오이디푸스는 이제 자신의 발을 마비시켰던 실을 푼다. 그는 스핑크스에게 대답한다. “인간이다!” 그는 이제 그 해답을 자신으로부터 찾는다. “인간이다” 라는 대답은 ‘그것은 바로 나다’ 라는 의미다. 오이디푸스의 대답은 인도경전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큰 가르침을 산스크리트어 문장인 ‘타트 트밤 아시(tat tvam asi), 곧 “그것은 바로 너다” 와 같다. 이 말의 의미는 “인생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은 바로 너 자체, 너라는 존재 안에서 발견되고 발굴되어야 한다” 이다.

‘여기’는 나를 인식하고 혁신 시키는 유일한 장소다.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는 노예를 해방시킨 모세는 어떤 인간도 들어가 본적이 없는 터부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 곳에서 불에 연소되지 않는 신비한 가시덤불을 발견한다. 그가 가까이 가자, 그 덤불 속에서 미세한 침묵의 목소리가 들려 나온다. “가까지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장소를 거룩하다. 신발 벗어라.” ‘네가 서 있는 장소’란 의미를 지닌 히브리 단어 ‘함-마콤(ham-maqom)'은 유대인들에게 신이 계신 특별한 공간을 의미한다. ‘함-마콤’의 축자 적인 의미는 ‘내가 서 있는 이 곳, 내 앉아 있는 이곳’ 즉 ‘여기’다. 내가 나를 더 나은 나로 개선할 수 있는 장소는 ‘여기’ 밖에 없다. 만일 내가 여기를 소홀하게 여기고 저기만 추구한다면, 여기는 곧 지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여기를 구별하여 성스러운 장소를 여긴다면, 여기가 곧 천국이다. 나는 오늘 내가 서 있을 장소를 어떻게 여길 것인가? 나는 오늘 내가 만드는 ‘여기’ 라는 상대방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노자가 말한 "거피취차(去彼取此)"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 는 것이다. 저 멀리 걸려 있으면서 우리를 지배하려 하는 이념들과 결별하고, 바로 여기 있는 구체적인 개별자들의 자발적 생명력, 자신의 욕망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와 다른 삶, 그것은 어떤 거대한 기회가 찾아올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순간, 내 삶을 바꿔야겠다 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기적은 시작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탐욕이다. 그 탐욕은 늘 저 먼데를 보고 있어서 바로 눈 앞에 있는 행복을 못 보게 한다. 지금 여기서 행복을 찾는 정신이 '거피취차'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획일적인 욕망 속에 있다는 것이다. 돈, 지위, 학벌, 권력, 이런 것들 말고도 더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다양하게 욕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2

인연(因緣)과 운명(運命) 그리고 숙명(宿命)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 본다. 인연이란 사람들 사이의 맺어지는 관계를 말한다. 운명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 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 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말한다. 숙명이란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말한다.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이고, 연(緣)은 간접적인 원인(原因)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꽃을 키운다고 할 때 씨앗은

인(因)이고, 땅이나 물은 연(緣)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인(因)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 봉선화를 심으면 봉선화가 피고 목화를 심으면 목화가 피고 제비꽃을 심으면 제비꽃이 핀다. 그러나 연(緣)은 다르다. 좋은 땅인가, 나쁜 땅인가 물을 많이 주느냐, 적게 주느냐 에 따라서 꽃이 활짝 피기도 하고 시들기도 하며 심지어 아예 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인연에 인(因)과 연(緣)이 있듯이 운명에도 운(運)과 명(命)이 있다. 운(運)은 태어날 때 받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명(命)은 태어날 때부터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운(運)이 좋은 사람도 있고, 운이 나쁜 사람도 있으나 명(命)이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은 없다. 노력 여하에 따라 운이 좋은 사람이 운이 나쁜 사람보다 어려울 수도 있고, 운이 나쁜 사람이 운이 좋은 사람보다 쉬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앞 날을 약간 예측 할 수는 있지만 모두 예측 할 수는 없다. 명(命)을 따라 미래가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명(運命)을 쫓아서는 안 되고 숙명(宿命)을 쫓아야 한다. 운명(運命)은 가야 할 "길"이고, 숙명(宿命)은 가야 할 "곳"이다. 사람은 저마다 숙명이 있다. 받은 운(運)과 만들어 가는 명(命)으로 숙명(宿命)에 이르러야 한다. 결코 떠밀리거나 끌려가서는 안 된다.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으나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길은 많다. 반드시 곧고 넓고 반듯한 길을 찾아야 한다.

3

잎 진 가지를 볼 날도 멀지 않았다. 아직은 볕이 따갑다. 더 매달려 주길 바란다. 그게 가을에 대한 믿음인데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아름다운 것은 오래 머물지 않으니. 잎 떨어지면 그 가지엔 무엇이 남아있을까. 우린 알고 있다. 바람이 매달려 있고 달이 머물다 가고 구름이 매달렸다 간다. 풀벌레 소리가 이 슬픈 시인을 대신해서 울어주는 거다. 밤을 새워야 하는 시인은 미물의 울음에 위로를 받는 게 아니라 아픔을 느낀다. 천리 길에 깔린 벌레 울음소리가 끝나게 되면 잎은 지고 시인은 가지에 마음을 매달아 보고 싶어 한다. 찬바람이 불고 가랑잎이 땅에 굴러가면 내가 죽고 시인의 이름은 남아서 가지가 흔들리고 긴 밤을 아마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기형도 시인은 우수에 젖은 시를 썼다. 그가 죽기 일주일 전에 ‘난 뇌졸증으로 죽을지 몰라’라고 친지들께 말했는데, 실제로 그는 종로의 심야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다 사망했다. 그의 문학관이 경기도 광명에 있다. 그의 시를 어제 <겸손은 힘들다>라는 유튜브 방송에서 류근 시인의 낭독을 들었다.

가을에/기형도

잎 진 빈 가지에

이제는 무엇이 매달려 있나.

밤이면 유령처럼

벌레 소리여.

네가 내 슬픔을 대신 울어줄까.

내 음성을 만들어줄까.

잠들지 못해 여윈 이 가슴엔

밤새 네 울음소리에 할퀴운 자국.

홀로 된 아픔을 아는가.

우수수 떨어지는 노을에도 소스라쳐

멍든 가슴에서 주르르르

네 소리.

잎 진 빈 가지에

내가 매달려 울어볼까.

찬바람에 떨어지고

땅에 부딪혀 부서질지라도

내가 죽으면

내 이름을 위하여 빈 가지가 흔들리면

네 울음에 섞이어 긴 밤을 잠들 수 있을까.

이어지는 글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