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최용기] 호머 헐버트 박사의 사민필지

최용기 승인 2024.04.19 08:53 의견 0

최용기 국어학자,문학박사 [사진=더코리아저널]


[특별기고 최용기] 호머 헐버트 박사의 사민필지 /최용기(국어학자/문학박사)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호머 헐버트 박사,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한 인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낯선 이름이다. 조선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 한민족의 우월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언어학자, 교육자, 언론인, 선교사, 고종의 밀사, 독립운동가로서 한민족과 늘 함께하였고 한국 땅에 묻혀 있다(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역). 저서와 논문이 아주 많지만, 우리 국민이 반드시 읽어야 할 그의 저서 ‘사민필지’의 주요 내용과 국어학적 특징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사민필지’는 1891년에 한글로 출간된 세계 지리 교과서이다(1889년부터 원고 집필). 서지적인 특징은 1권1책 161면과 지도 9장 총 170쪽이다. 초판본의 책 내용은 일본(요코하마)에서 출판(양면)하였는데, 표지는 헐버트 박사가 손 글씨로 써넣어 책등에 구멍을 뚫어 실로 묶어 낱권으로 제본하였다고 한다(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

본문은 1단 17자 28행이고 서문 우측에 책명이 있고 본문의 시작에는 편명을 기술하였다. 또한, 본문 좌측 아래에 쪽수를 기재하고, 좌·우측 상단에는 책명과 판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본문 아래에 작게 기재(주석)하였다.

책의 구성에서 첫 장은 헐버트 박사의 서문으로, 저술 의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현재 천하만국의 사람과 풍속이 통하기를 마치 한 집안과 같다고 하며, 각국의 이름, 면적, 위치, 지형과 소산물, 정치, 국력, 재정, 군사, 풍속, 교육, 종교 등 천하 형세를 알아야 국제 교섭에 거리낌이 없을 것이라 하였다. 또한, 한글이 중국의 한자에 비해 훨씬 편리한데, 조선 사람들이 그런 줄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한글을 업신여기니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전체적인 내용은 땅덩이(지구),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순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다. 땅덩이에서는 지구의 구조와 천체 운동의 원리, 그믐과 보름, 일식과 월식, 구름과 비, 바람, 천둥, 지진, 이슬, 눈, 우박, 서리, 밀물과 썰물, 혜성, 유성 등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 은하수와 대륙, 바다, 인종 등의 정보를 기록하였다. 유럽은 러시아,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스위스, 이탈리아, 헝가리, 터키, 루마니아, 그리스 등 19개국을 기록하고, 아시아는 중국, 조선, 일본, 베트남, 태국, 미얀마, 인도, 아프가니스탄, 아랍, 이란, 중동 등 11개국을 기록하였다.

아메리카는 캐나다,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가나, 브라질, 에콰도르, 페루, 칠레,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20개국을 기록하고, 아프리카는 이집트,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세네갈, 감비아, 수단, 소말리아, 모잠비크, 에티오피아 등 30개국을 기록하였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와 태평양의 19개 섬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이 책의 내용적인 주요 특징은 조선인들이 꼭 알아야 할 지식을 담은 근대사적 최초 천연색 교과서이자 한글로 만든 최초 교과서이다. 조선에 온 지 4년 반 만에 출간하였다고 하니 매우 놀랍다. 책 출간의 목적이 미국에서 모두가 배우는 보편적 지식을 조선인에게도 배우게 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였다. 이 책은 단순한 세계 지리책이 아니고 각 나라의 사회 제도를 담은 일반 사회책이기도 하다.

가령, 미국은 대통령을 4년마다 선출하고 국민 대표기관인 의회가 있고, 재판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기술하였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도량형 단위를 조선인이 사용하는 단위로 표기한 것인데 거리의 단위는 ‘리’, 높이의 단위인 ‘척’, 곡물의 단위는 ‘석’, 수출입액도 ‘원’으로 표기한 것이다. 또한,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기록하고, 한반도의 폭이 남북이 삼천리, 동서가 육백 리라 기록하였다.

다음으로 국어학적인 주요 특징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표기의 변화인데 대표적인 것은 된소리와 분철 표기, 사이시옷 표기 등이다. 된소리 표기는 각자 병서(ㄸ, ㅃ, ㅆ)와 합용 병서(ㅼ, ㅽ)를 구분하여 기록하고, 분철 표기는 형태주의 원칙을 준수한 것이다. 간혹 형태를 밝히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분철 표기를 유지하고 있다. 사이시옷 표기는 합성어를 이룬 경우에 ‘돌ㅅ덩이’처럼 기록하였다.

둘째, 음운의 변화인데 구개음화와 두음법칙의 혼란을 볼 수 있다. 초판에서는 구개음화가 적용되지 않은 표기가 많이 나타나지만 혼용된 경우도 있다(예, 죠션: 됴션). 두음법칙은 적용되지 않았다(예, 륙지 잇는 곳). 셋째, 어휘와 문법 변화도 볼 수 있다. 어휘 변화는 매우 중요한 특징인데 ‘버터’를 ‘쇠졋기름’, ‘치즈’를 ‘쇠졋떡’으로 표기하고, ‘지구’를 ‘땅덩이’, ‘수출’을 ‘내다 파는 물건’, ‘수입’은 ‘사 드리는 물건’ 등으로 한자어와 함께 적기도 하였다.

문법 변화는 형식적인 문장 표현이 적고 어미의 문법화 과정을 볼 수 있다(예, ~건마는, ~이오). 넷째, 외국의 국명을 영어식 발음으로 음차 표기를 하였는데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을 볼 수 있다(예, 유로바, 아라사국). 다섯째, 띄어쓰기의 본보기를 보여 주고 있는데 마지막의 ‘여러 적은 셤’ 부분에서 단어별로 띄어 쓴 점은 매우 특이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한글로 쓴 최초 천연색 세계 지리 교과서인데, 고종이 ‘법률과 칙령은 국문(한글)을 기본으로 한다’라는 칙령(1894)보다도 3년이나 앞서고 유길준이 서구 문화를 소개한 ‘서유견문’(1895)보다도 4년이나 앞섰으며, 한글 띄어쓰기를 시도한 독립신문(1896)보다도 5년이나 앞섰다. 또한, 조선인에게 평등사상과 민주 정신을 심어 주었으며, 19세기 우리말의 특징을 잘 보여 준 매우 뛰어난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한글새소식 619호, 2024년 3월호의 내용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사민필지표지 [사진=최용기]
호머할버트 박사 [사진=최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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